"캠핑 중에서도 진짜 낭만은 겨울 캠핑이야" " ...확실해?"
나는 스스로가 ‘잘 노는’ 것 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왔다. 사실 잘 모른다. 어디에 많이 다녀본 것도 아니고, 이것저것 찾아다니는 스타일도 아니다. 모험이 두려워 늘 피하기만 하는 성격까지는 아니더라도, 새로운 것들이 내겐 잘 보이지 않아 시도해 볼 생각조차 못 한 일들이 아직 세상에는 많이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고맙게도, 내 주변에는 이런 나를 데리고 다양한 세계를 탐험시켜주는 이들이 있어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눈 앞에 놓인 현실에서 그들에게 최선의 사랑을 전하는 것 뿐이겠지. 더 놀라운 것은, 1년 반 동안 나라를 지키던 모두가 힘든 시기에도 내게 축복과 같은 인연은 찾아왔다는 것이다. 함께 들어가고 나온 동기는 물론이거니와, 꽤 많은 이들이 나의 세상을 그들의 따뜻함으로 넓혀 주었지만, 그 중에서도 이번 글은 키무상을 위해 써보고자 한다.
자칭 캠핑 전문가인 그는, 진정한 캠핑은 찬바람이 시리게 부는 때에 하는 캠핑이라며 수달군과 셋이서 캐러반을 빌려 놀러가기를 제안했다. 자다가 입이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했었지만, 그래봤자 얼어죽기보다 더 하겠나-는 생각으로 수락했다. 그리고 사실 한번쯤 이런 여행이 가보고 싶었기에 추운게 뭐 대수냐 싶은 마음이 더 컸다ㅋㅅㅋ. 이것저것 준비한다는걸 핑계로 모여 잡담만 주구장창 나누던게 불과 얼마 전인 것 같은데 금방 약속했던 날이 다가왔고, 출발 당일 우리는 동서울 터미널로 모였다.
출발하기 전에 키무상은 갑자기 약국에 가서 타이레놀을 산다거나, 카페에서 좀 쉬다 천천히 출발하자는 이상행동을 하더니, 커피나 한 잔 마시고 가자며 찾았던 3층 카페에서 갑자기 미상의 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뭔가 싶어서 열어봤는데 자기가 준비하던 대학의 합격증이 꼭꼭 접혀있던게 아닌가. 사실 너무 급작스러운 전개에 당황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랐다. 게다가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은 딱히 없었기에 별로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인생의 중요한 한 순간을 공유해 준 마음을 생각해서 리액션을 좀 더 크게 해줄걸. 수달군이 격하게 축하해줘서 다행이었다. 고멘나사이-
좋은 소식과 함께 조금은 힘찬 발걸음으로 버스에 올랐고, 곧장 포천으로 향한 버스는 '수달군을 포함한' 군인들과 우리를 태우고 가볍게 달렸다. 내려서는 터미널 근처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본 뒤에 귀여운 고양이 두 마리가 있는 글램핑장에 도착했고, 한달 전부터 그가 강조하던 색깔이 쨍한 빨간 캐러반-깡통이라 불리는-으로 안내받았다. 깡통 8호는 글램핑장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어 주변이 시원하게 트여있었던 것이 맘에 들었다. 짐을 풀자 해가 저물어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졌지만, 사장님이 불을 피워주시자 금방 분위기가 따릇따릇해졌다. 고기 마스터를 자처한 키무상은 오랜 인내를 곁들여 두꺼운 삼겹살과 목살을 기가 막히게 구워냈고, 바비큐가 끝날 무렵 구워먹었던 마시멜로는 그 순간만큼이나 달콤한 맛이 났다. 물론 여러 개 먹기에는 너무 달았지만, 수달군은 끊임없이 먹는 것을 보아하니 역시 미국인이다. 이중국적 신청할 때 마시멜로 많이 먹기도 평가 항목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우려했던 것만큼의 한파는 없었지만 그래도 꽤 차가워진 밤공기를 뒤로 하고, 테이블을 간단히 정리한 후 캐러반 안으로 들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크게 핵심적인 주제도, 반짝이게 새로운 내용도 늘 없지만, 그럼에도 늘 편하고 재미있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멋진 일이다.
끊임없이 대사를 만들어낸 우리들은 지쳐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밤새 바닥의 전기장판이 예상보다 뜨거워서 등은 탈 것만 같고, 왼쪽 벽에 닿은 몸은 외풍에 시렸고, 발바닥에 닿은 창문은 내 발가락을 얼리는 바람에 설잠을 자서 아침에 비몽사몽하게 눈을 떴지만, 캐러반의 좁은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의 하얀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서 금새 정신이 뜨였다. 간단히 씻고,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아침라면을 먹고는, 너무나 시간이 금방 흘러버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포천을 떠났다.
나는 뭔갈 하고 난 이후에 소감을 물어보는 시간이 늘 곤란했다. 그 자체가 별로라기보다는, 그 순간에 모든 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내 자신의 한계가 조금 미울 뿐이다. 그냥 좋았다는 말로 넘기기에는 이 복잡한 감정을 짧은 시간에 요약해서 뱉어내기가 너무 어렵다. 집에 돌아가는 버스에 타기 직전까지도 이번 여행이 어땠냐고 내게 계속 물어봤던 것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대답이 기대했던 것만큼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나도 어쩔 수 없는 경상도 사람이라는 핑계로 살짝 덮어본다.
그럼에도 표현하지 않으면 서로의 진심을 알기가 어렵다. 물론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들은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때때로 부족하다. 맞다, 나는 표현에 능통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내게 늘 풍부한 표현으로 마음을 전해주는 키무상과 수달군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나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이들에게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나누며 함께 살아 나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키무상이 합격의 순간을 위해 준비해왔던 노력을 하나하나 다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름 가까이서 지켜봤던 사람으로써, 미처 말로는 다하지 못했던 축하를 전하고 싶다. 수많은 고통의 끝에서 주어지는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에 대한 희노애락을 느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과는 그저 긴 여정의 끄트머리 일부이며 따라오는 언터쳐블의 영역이라 생각하는 나로서는 '합격에 대한 축하' 보다는 그 시간을 이겨낸 단단함이 멋지고 또 고생많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고생했다" 와 "어머 정말 잘됐다!!"의 중간값 정도 감정선으로 담백한 인사를 전하고 싶다.
멋진 곳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그 누구만큼이나,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분명 언젠가의 미래에 또 마주하게 될 새로운 막막함의 순간에서, 이 글을 꺼내 보며 한 번 정도 가볍게 미소 지을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을 담아 이만 글을 맺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