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가 관광지 중심가로부터는 거리가 있는 편이었지만, 내가 머릿속으로 그렸던 여행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럴 필요가 있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자전거를 여행기간 내내 빌려줘서 좋았고, 근처에 크고 저렴한 마트가 있어서 매일 저녁에 간식거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가기가 용이했다.
1일차 저녁, 창코미시마에서 카레나베를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루미에르를 들러 과일 몇 개와 우유 푸딩, 말차 두유팩 하나(얘가 제일 맛났었다), 귀여운 간식들과 규슈 특산품 딸기 한 팩을 카트에 담았고, 또 저녁에 식당에서 마셨던 아카키리시마 고구마소주 한 병을 루미에르 리큐르 코너에서 구입하여 자전거 앞 캐비닛을 가득 채워 숙소로 돌아갔다. 루미에르는 현지인들이 퇴근 후에 많이 찾는 곳이었고, 가격도 다른 곳에 비해서 저렴한 축에 속했기에 부담없이 새로운 현지 음식들에 도전해보기 좋았다. 하지만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읽을 수 있었음에도, 한자를 거의 모르니 제품 이름도 모른 채 느낌 만으로 물건을 사야만 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씻고 누워 달달한 푸딩을 먹으며 하루를 정리했고, 침구 옆 작은 티비에서는 일본 축구를 분석하는 패널 참여형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내가 후쿠오카에 도착하기 하루 전날에 일본이 스페인을 꺾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기 때문. 그러고 그 날은 한국과 포르투갈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포르투갈을 잡아야만 16강 진출이 가능했던 상황이었기에, 한국에 있는 지인들은 다들 월드컵을 보기 위해 펍을 찾았다니곤 했다지만, 나는 겨우 일본 중계 어플로만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다음 날 여행 일정도 있으니 그냥 잘까 하다가도, 어쩌면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루미에르 리큐르 코너에서 같이 담았던 기린 생맥주와 딸기 몇 개를 입에 넣으면서 중계방송을 틀었으..나 전반 이른 시간에 먹혀버린 골. 그러고 가벼운 마음으로 보다가 터져버린 동점골, 어쩌면 꺾이지 않을지도? 라는 생각이 드는 후반 15분 즈음 나는 비행의 피곤함과 가벼운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버렸다. 아차, 눈을 뜨니 이미 새벽 두 시 반. 경기가 끝나고도 한참 지났기에 네이버에 들어가서 결과만 보고 자야지. 엇?
진정한 간절함은 때때로 기적과 같은 순간을 선물해준다. 그 기적을 완성해낸 대표팀의 투지에 박수를 보내며 후쿠오카에서 첫날 밤, 잠자리를 바르게 고쳐 펴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