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이틀 차 아침__이라기엔 도착한 지 12시간 남짓이지만__이 밝았다.
8시쯤 느지막하게 일어나 화장실 거울로 내 모습을 가볍게 점검, 살짝 뒷머리가 눌렸지만 모른 척 후드 모자를 뒤집어쓰고 밖으로. 자전거 자물쇠를 풀고, 어쩌면 벌써 이곳이 익숙해져 버린 것만 같은 느낌으로 페달을 밟았다. 숙소 베란다에서 보이던 작은 항구의 어업 선박들은 주말도 잊은 채 분주하게 움직였고,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에 비친 햇빛은 내게 기분 좋은 눈부심으로 부스스한 아침을 깨워줬다.
차분한 아침 공기 속에 느껴보고 싶었던 분위기가 있어, 미리 구글맵에 핀포인트를 놓았던 곳으로 직행했다. 토요일이라 고요한 공기의 관공서와 학교를 지나, 구름 속에 가려 번진 햇빛과 적당히 차갑고 조용한 바람 사이로 들리는 새소리가 괜히 무거운 듯 말끔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건널목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자 하코자키 신사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 맞은편에는 어두운 갈색빛의 목조 건물로 된 두 층짜리 빵집이 있었다. 그 앞에는 큰 나무들이 있어 주변 분위기와 건물이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졌다. 이곳은 바로 ⌜나가타빵 하코자키점⌟. 빵을 사서 먹고 갈 경우에 보온통에 미리 내려진 커피를 무료로 마실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이른 시간임에도 계산하는 줄에 네 명 정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연유빵과 명란 바게트가 맛있다는 후기를 봤기에 아무 고민 없이 매대로 자신 있게 다가갔는데, 아차차! 아직 가타카나가 눈에 익지 않았던 터라 빵 이름이 적힌 푯말들을 읽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연유빵처럼 생긴 비슷한 모양의 빵이 많아서 결국 그중에 예쁘게 생긴 걸로 골랐다. 명란 바게트는 안 보이길래, 수줍은 목소리로 멘타이코.. 아리마스까? 했더니 또래로 보이는 친절한 여학생 알바가 십 분 뒤에 나온다고 알려주었다. 일본 가게에서 일하는 분들의 서비스용 하이톤 목소리는 뭔가 모르게 상냥하면서도 경쾌해서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아무튼 일단 연유빵(추정) 하나만 계산하고 커피를 한 잔 받아서 2층으로 올라갔다.
폭이 좁은 계단을 올라가니 헤드셋을 끼고 창문 쪽으로 멍때리고 있던 여자 손님과 그 뒤쪽으로 가족끼리 와서 여러 빵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가족 손님이 있었다. 목조 건물이 주는 특유의 느낌 덕에 그 순간 내가 여유로운 아침을 수수하지만 고상하게 즐기는 잔잔한 일상물 영화의 등장인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손에 잡히는 작은 소설책을 들고 몰입하는 표정까지 취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주인공 재질. 창문을 바라보는 바 모양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은 순간, 날 비추는 햇살과 잔잔한 바람에 간지럽게 흔들리는 건너편 나무들의 초록빛 물결이 너무나 좋았다.
연유빵(추정)을 다 먹고 내려가서 명란 바게트가 언제 나오냐고 물어봤더니 또 10분이 걸린다는 것이 아닌가?! 물론 내가 뭔가 이전부터 잘못 이해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10시에 나온다는 말이었을까,,? 깔끔히 포기하고 먹음직스럽게 생긴 타마고산도를 집어 와서 남은 배를 채웠다. 결과는 굿 초이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안 먹어봐서 사실 여기가 최고인지 논할 수는 없지만 맛이 좋았던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지쳤던 시기에 떠난 여행이었기에 이날 아침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기억에 진하게 남았을지도 모른다.
이곳에서의 아침은 전체 여행 통틀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순간이었다.
위치는 구글지도로 아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