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시리즈는 포항공대에서 2023년부터 새롭게 시작한 Nobel Week(노벨 위크) 프로그램을 통해 스웨덴 파견을 다녀온 학부생의 개별기록입니다!
학교의 공식 기록이 아니며, 작성자의 개인적인 느낀점을 가득 담은 후기입니다.
두근두근 인천으로
새벽 3시에 지곡회관에서 모여 대절한 관광버스를 타고는 인천공항으로 나섰다. 학기 중에, 그것도 월요일에 인천공항에서 맞이하는 아침이라! 이질적이면서도 뭔가 모르게 느껴지는 미묘한 일탈의 기운에 들떠있었던 것 같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따로 요청드려서 복도 쪽 좌석으로 변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는, 인천 본가에서 바로 공항으로 오기로 한 나의 팀메이트를 기다리며 다가올 9학기의 수강신청을 했다. 어쩌다 보니 출발 이틀 전에 결정된 초과학기 이슈 덕분에 공항에서 휴대폰으로 수강신청을 해야만 했는데, 수강신청 홈페이지가 주는 반사적인 긴장감 덕분에 이 두근거림이 스웨덴 여정을 향한 기대감으로 착각하기에 충분했다. 썸타는 친구와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와 비슷한 효과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출발하기 바로 전날 까지도 별로 실감 나지 않던 이 비행이 이제는 비로소 현실이 되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인천공항 출국장 게이트 안에서 유니폼을 입은 핑크퐁이 반겨줬다.
한국 전통 기념품을 파는 가게 앞에서는 국악 공연도 하고 계셨다. 외국인들이 보면 흥미롭다 생각하겠지?
이것저것 구경하다 탑승 게이트 앞으로 가서 남은 시간을 떼우고, 탑승 시간이 되자 우리들은 아직 잠이 덜 깬 정신으로 비행기 연결 통로를 밟아나갔다. 저 순간에 살짝 부풀어 오를 듯 한 그 감정은 어찌도 매번 새로운지.
이륙하는 줄도 모르고 기절해 버린.. 그러나 즐거웠던 비행
분명 비행기에 올라타서 자리를 확인하고 기내 수화물을 선반에 넣은 다음 앉았는데,, 분명 거기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웰컴 드링크 서비스를 내 바로 앞줄의 승객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 것이 아닌가? 바로 정신을 가다듬고 내 자리 앞에 몰래 넣어주신 드링크 리스트를 빠르게 위아래로 훑고 나서 스파클링와인을 마시기로 결정했다. 이륙하는 느낌도 전혀 못 느낄 정도로 새벽의 피곤함이 남아있었나 보다. 그 짧은 순간, 눈을 바로 뜨고 알콜을 넣게 되면 몸이 망가질 것만 같다는 직감에 물 한 잔도 함께 요청드렸다. 물을 원샷으로 들이키고 정신과 입맛을 찾은 뒤에 달콤한 스파클링 와인 한 모금과 함께 그날의 비행은 시작되었다.
곧이어 첫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메인 요리 올리브 토마토 닭고기 스튜랑 불고기 중에 고를 수 있었는데, 명색이 유럽여행인데 벌써 불고기를 먹을 수는 없지. 라는 각오로 시킨 토마토 닭고기 스튜는 음.. 실패였다. 사실 그렇게 맛이 별로까지는 아니었지만, 옆자리에 앉은 세 모녀 여행객이 드시던 불고기가 맛있어 보였다. 아숩
유럽 방향으로 가는 비행이 돌아오는 비행시간보다 훨씬 길다. 혹시나 시차 적응에 어려움이 있을까 봐 수면 패턴을 미리 맞춰놓을까, 했는데 역시 출발 비행기는 잠이 잘 안 온다. 뭔가 모르게 잠들기 아까운 기분.. 드링크 리스트에 있던 '시즌 칵테일'이 뭔지 궁금해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나의 팀메이트도 이게 궁금했더란다. 생각보다 의외의 부분에서 꽤 자주 코드가 맞는 파트너랄까. 팀메이트는 음료 서비스를 하시는 승무원분한테 기내식 서빙할 때 여쭤봤더니, 캐빈으로 오면 진토닉, 잭콕, 모히또를 직접 제조해 주신다고 하셨다더라. 이런 거 또 잘 못 참지만 혼자 가기는 약간 뻘쭘한데, 둘이 함께여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 기내식 서비스 정리를 마무리하신 분위기일 때, 우리는 갤리로 진격했다.
가서 나는 진토닉을 한 잔 부탁드렸고, 감기 기운이 있던 팀메이트는 모히토를 받아서 나에게 주기로 했다. 만드시는 동안 시즌 칵테일을 이렇게 요청하러 오는 승객이 평소에도 많냐는 나의 물음에 담당 승무원께서 '음.. 잘 모르겠어요, 저 원래 퍼스트 클래스 담당이라 이코노미 잘 안 오는데- 오늘 운 좋은 거야'라고 답하셨다.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고는 유쾌한 승무원 누님께서 양손 가득 쥐어주신 스낵과 초콜릿을 잔뜩 가지고 자리로 복귀했다. 중국 대륙 상공을 지나는 비행기 안에서 재밌는 승무원분께서 직접 만들어주신 진토닉은 평생 기억에 남을 한 잔일 것이다. 이런 섬세한 서비스와 즐거운 순간들이 여행을 괜히 더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서비스 모드여서 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와 대화를 나눴던 승무원은 정말 자신의 일을 즐기는 사람 같았다. 출발 편 비행시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
입이 심심하지 않게 도와준 초코 스낵들. 아까 갤리에서 주신 과자가 너무 많아서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이 주머니에서 계속 나왔다. 사실 초코과자보다 바삭-짭쪼름한 프레첼 스낵이 더 좋았다. 계속 앉아있으니 허리가 아파서 팀메이트랑 같이 구석에 일어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그래도 가긴 가더라.
비행기 안에 불이 다 꺼져서 자리로 돌아와 잠시 눈을 붙였는데, 말똥말똥 잠이 안 와서 뒤척거리다가 앞 화면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체스게임을 했다. 근데 봇 고정 난이도를 최상으로 설정해 두었는지,, 그 친구 너무 잘해서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던.. 에잇 잠이나 자자,, 하고 겨우 한 시간 정도 잤으려나. 원래 일정에 비행기 내려서 스웨덴으로 환승하면 밤늦게 도착이라, 최대한 잠들지 않고 버티다가 숙소에서 자는 게 목표였기에 눈을 뜨고 버텼다.
착륙 한 두 시간 정도 전에 마지막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세상에 버섯 크림소스 링귀네 파스타라며. 크림 소스 어디 간 거야 대체... 너무 딱딱해서 당최 먹을 수가 없었다. 채소만 조금 집어 먹고 말았다.
시간이 조금 흘러 비행기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했고, 이제 스웨덴으로 향하는 환승편을 갈아타기 위해 환승 탑승구 앞으로 향했다. 누군가는 노벨 위크 때문에 빠져버린 기간의 과제를 급하게 하기도 했고, 비행기에서 있었던 일들을 재미있게 나누던 친구도 있었다. 나름 각자의 방식으로 지루한 환승편 기다리는 시간을 때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려온 불안한 소식...
유럽 전역에 폭설 경보가 내려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편이 거의 다 취소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원래는 뜨기로 했던 우리의 환승편도 취소가 되었다는 것..
빠밤. 다음편에 계속